그러게, 전에 말을 하지.

열 번에 일곱 여덟 번은 야근하는 요새, 간만에 일찍 퇴근해서 집에 들어선 순간 오랜만에 맡아보는 콩나물향이 코끝을 스쳤다.

“다녀왔어.”

“어서 와요”

매일 보는 아내지만 늦은 밤이 아닌 저녁에 보는 얼굴은 항상 반갑다. 침대에서 헤드폰을 쓰고 스마트폰과 뒹굴거리는 아들은 아직 아빠의 퇴근을 모르는 것 같다.

“아빠 왔다.”

“아빠, 안녕히 다녀오셨어요.”

일어나서 인사를 넙쭉하더니 대뜸 부탁을 던진다.

“햄버거 먹고싶어요.”

“엄마가 국 끓여놨잖아, 그냥 밥 먹어.”

“네.”

“그러게, 밥하기 전에 말을 하지.”

 

필자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만드는 프로그래머이다. 최근 다섯 달에 걸쳐 진행하던 공공기관 소유의 경보 시스템이 완성되었는데, 해당 시스템은 기존에 잘 쓰던 시스템을 더 좋게 업그레이드하는 작업이었다. 물론 평소 유지 관리하는 업체는 따로 있다. 작업이 다 된 후 한 연락을 받았다. 최근 몇 가지 기능이 기존 시스템에 추가되었는데, 이번에 필자가 오픈한 시스템에는 추가된 기능이 없다는 것이다. 시스템을 유지, 관리하는 업체가 그 이야기를 오픈한 마당에 해당 공공기관의 공무원을 통해서 말한 것이다. 작업하는 몇 달 동안 말 한마디 없더니. “그러게, 진작에 말을 하지.”

 

이런 일은 우리네 일상에 꽤나 자주 일어난다. 말 한마디만 해줬으면 서로 오해할 일도, 미워할 일도 줄어들 텐데 말이다. 물론 이해관계가 서로 상반되거나, 좋지 않은 감정이 쌓였거나 하면 이야기하기 싫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잠깐 이야기 하는 것이 서로 감정 상해가며 목에 핏대를 세우는 것이나 손해 배상 청구 소송보다는 훨씬 쉽다. 그리고 이 말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지금 이 순간은 지금 이 순간 밖에 없다.”

 

사랑하는 아내도, 귀여운 아이도 천년만년 나와 같이 사는 것은 아니다. 극단적으로 내일이 이 세상의 끝이라는 생각이 아니더라도, 자식은 언젠가 커서 집을 나갈 것이고, 나도 아내도 언젠가 늙어 헤어질 날이 올 것이다. 그러니 그 전에 말 한마디라도 예쁘게 하자. 별로 힘든 일도 아니니까 말이다. 세상을 아직은 길게 살아보지 않아서 내일이 어떨 지는 잘 모르겠지만, 오늘은 반드시 행복한 그리고 즐거운 날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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